[살며 생각하며] 바람 빼고 2022
처음 미국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일이다. 교수님 질문에, 와, 완전 대박, 정답이 바로 떠올랐다. 문제는 손이 올라가지 않는 것이었다. 완벽한 영어가 안될까 봐, 내 손은 재빠르게 일 톤의 무게로 변해버렸다. 그때 누가 손을 번쩍 들더니, 글쎄 내 대답을 지가 술술 하신다. “You just hit the head of the nail(바로 그거야)!” 하며 완전 칭찬하는 교수님, 이그, 내 완벽주의가 심히 원망스러워지면서, 머리를 강의실 벽에 짓찧고 싶던 순간이었다. 인생이라는 사막에서, 완벽주의나 내 방식이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몰고 가던 차가 모래 웅덩이에 갇히기라도 하면, 내 자존심과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하는 정체의 순간을 만난다.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Shifting Sands)’의 저자 스티브 도나휴도 사하라를 건너다 차가 모래에 빠진다. 운전자는 알제리아 출신 엔지니어 장뤽, 기계에 능한 그는 모든 방법을 동원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고운 가루 같은프슈프슈라는 모래 웅덩이에 갇혀버린 차는 점점 더 모래에 파묻힐 뿐이다. 그때 누가, 엑셀을 밟지 말고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고 조언을 한다. 그러면 타이어가 모래와 닿는 면적이 넓어져 차가 움직일 수 있다고. 그러나 사막 전문가를 자처하는 장뤽에게 다른 사람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아무런 방법도 안 통하고, 섭씨 50도 더위 속에 일행의 생명이 위협받게 될 지경에서야, 그는 할 수 없이 타이어에 바람을 뺀다. 순간 차는 기적처럼 모래를 빠져나간다. 모래에 갇히면 타이어에 바람을 빼라(When you are stuck, deflate), 저자가 말하는 사막을 건너는 세 번째 방법이다. 아스팔트가 갑자기 끝나고 모랫길이 나타날 때, 우리의 방법이 더는 먹히지 않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해오던 방식을 좀 내려놓고 자아에서 공기를 조금 빼는 것이다. 밀어붙이는 대신, “몰랐었네, 내가 잘못 생각했네”라고 말할 수 있다. 사과하고 도움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공기를 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책에 나오는 아프리카 다가라 종족 출신 작가 말리도마소메는, 사십 대 초반 자기 나라로 돌아가 뒤늦은 성인식을 치른다. 마을 한복판에, 중년의 그가 이틀간 앉아 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찾아가 그의 모든 실수를 언급하며 비난하고 꾸짖는다. 모욕하고 평가절하한다. 두 개의 박사 학위와 세 개의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라도, 단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하는 것이 규칙이다. 나라면? 오, 노, 첫 분 방문 이후 바로 떠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아에서 오만의 공기를 빼고 겸손하게 되어야 진정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들의 지혜는 참 놀랍다. 완벽주의의 바람을 뺀 삶은 얼마나 편한지. 보니까 틀리든 말든 막말을 하는 애들이 영어도 제일 빨리 배운다. 집착의 바람을 뺀 삶은 또 얼마나 자유로운지. 발목 붙잡는 과거와 작별하고 새로운 시작을 선물한다. 체면의 공기를 뺀 삶은? 몸치가 춤을 추게 한다. 지난 늦가을 센트럴 파크에서 거리 뮤지션의 캐럴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춤을 췄다. 누가 인스타에 올리긴 했는데, 이 명장면이 현재까지 조회 수 겨우 44회인 것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신비이다. 2021년이 저물어 간다. 송년의 계절에 불필요한 바람은 빼고, 그 자리에 필요한 새로운 기운으로 채워, 2022년에는 우리 모두 오아시스를 향해 고고씽을 기원해본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모래 웅덩이 사막 전문가 가지 방법